재난 이후, 대학이라는 ‘공룡’의 미래

2020.03.17 20:41 입력 2020.03.17 20:44 수정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드러난 이 시대의 진짜 문제는 신천지도 중국도 아닌 가난과 불평등이라는 통찰이 실로 설득력 있다. 당장의 재난을 타개하는 것뿐 아니라 위기 탓에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하게, 약자가 더 약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모든 방책이 모색·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재난’은 재난 상황 그 자체와 ‘재난 이후’로 이뤄진다. ‘재난 이후’의 과제는 어쩌면 더 힘겹고 크다. 이를테면 신천지 같은 종교-네트워크에 빠진 소외된 젊은이들을 이 사회가 보듬고 다시 사회화시킬 만한 역량이 있는지?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과 늘 경제적으로 취약한 소상공업자들을 위한 인간적 작업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지? 이런 견지에서 사태의 와중에 (재난)기본소득과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것은 그나마 소망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정동칼럼]재난 이후, 대학이라는 ‘공룡’의 미래

대학도 다를 바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한국 대학의 취약함과 모순을 새삼스레 드러내고 있다. 이 위기를 거치며 또 ‘재난 이후’에 대학이라는 공룡이 멸종위기에 처할지, 도마뱀처럼 적응할지, 아니면 더 기괴한 괴물로 진화할지 알 수 없다. 대체로 불길하다. 사태로 드러난 대학의 문제점과 위기의 모습은 여러가지지만, 온라인 강의 대란은 대학의 근본적 존재론에 관련된다.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웃프고’ 황당하고 답답한 사연들이 전국의 대학과 교강사와 학생들의 컴퓨터 화면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모두 처음 맞는 이 불가피한 상황이 당황스럽고 힘들다. 현상적으로는 교수·강사들이 비대면 수업과 동영상 강의에 익숙하지 않아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태의 실제 배경은 원격 수업에 필요한 인프라와 기준에 대한 대학의 준비가 없다는 데 있다. 특히 학교의 지원 없이 고용량의 장비, 제작과 업로드 등 기술적 문제가 교강사에게 떠맡겨진 경우나, 학생들에게도 추가 부담(각자 괜찮은 성능의 장비와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저소득 계층 학생들과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없는 유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이 부여된 경우도 많다. 당장 교실 개강 전까지 대학들은 최선을 다해서 온라인 강의 환경을 개선하고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과 비정규직 교강사를 배려해야겠다.

그런데 등록금 반환 운동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학생들의 불만은 기실 비대면 수업 이상의 근본 문제에 닿아있는, 묵은 이야기다. 즉 한국 대학의 교육의 질과 ‘졸업장’의 ‘가성비’ 문제다.(대학생을 ‘청년’이 아닌 가성비 따지는 소비자로 바꿔놓은 책임은, 대학을 이념과 자치를 상실한 직업 훈련소로 만든 기성세대와 대학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다.) 가깝게는 강사법 시행 전후로부터 대학 교육의 질이 급격하게 나빠져왔고, 이에 대한 학생들로부터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대다수 원격수업은 대학이란 곳이 제공해야 할 최고 수준의 교육과 그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학원이나 실습·실험 수업은 물론 기초 교과에 속하는 것도 상호 작용과 상호 주체성이 없다면 부족하다. 일방적으로 트는 동영상 강의가 유튜브와 쉽게 비교되는 것은 당연하겠다. 거기엔 진정한 전문가나 전인적 삶의 주체가 되는 길이나, ‘교학상장’도 ‘해방을 위한 페다고지’도 없다. 원격수업은 지금처럼 비상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대학에 시간·공간·비용을 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채택되는 교육 서비스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대학 논리에 찌들거나 미국식 대학교육의 ‘선진성’(?)을 오해하는 일부 대학 당국자가 온라인 수업이 마치 진리이자 대안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비상상황에서 대규모로 급하게 진행되는 원격수업 실험이 성공적이라면? 오히려 현재의 대학체제와 그 근본에 더 큰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대도시 한가운데 지어놓은 커다란 건물들은 무슨 소용이며, 정규직 교수의 권력 독점에 기반한 행정체계와 이사장·총장·학장들의 권위와 감투는 무슨 필요가 있겠나? 좋은 온라인 강의 솔루션과 유능한 데이터 관리자, 그리고 ‘일타 강사’ 그룹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하면 되지 않는가? 이미 이런 방향을 구상하는 대학 자본가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은 그리 간단한 제도는 아니다.

사실 지금 당장 한국 대학의 재정 부족을 해결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한두 단계 높일 수 있는 쉬운(?) 대안은 이미 나와있다.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하고 사학재단이 전입금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하며, 부실·부패한 사학을 공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내부의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확장하면 된다. 다만 기득권과 정부와 교수들의 안일함이 철벽이기 때문에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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