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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총장 직선제 폐지한다고 목숨 던진 게 아니다"

부산대 교수 투신 의미는…"정부 통제·민주적 거버넌스 충돌"
"민주주의 훼손에도 무디어져 가는 우리 사회에 경종" 의미도

(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2015-08-18 19:29 송고 | 2015-08-20 18:38 최종수정
17일 오후 3시께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본관 건물 4층에서 국문과 고모(54) 교수가 1층으로 투신했다. 고 교수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분여분 만에 숨졌다. 부산대 교수회가 투신사망 지점 앞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장에는 총장 직선제 이행을 촉구하는 A4용지 2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2015.8.17/뉴스1 © News1
17일 오후 3시께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본관 건물 4층에서 국문과 고모(54) 교수가 1층으로 투신했다. 고 교수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분여분 만에 숨졌다. 부산대 교수회가 투신사망 지점 앞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장에는 총장 직선제 이행을 촉구하는 A4용지 2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2015.8.17/뉴스1 © News1


"단순히 총장 직선제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총장 선출 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부산대학교에서 한 교수가 지난 17일 투신해 숨진 사건을 두고 교수·교육단체는 18일 '총장 직선제 수호'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대 내부 문제나 총장 직선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눈치만 봐야 하는 대학 자율성 훼손과 민주적 거버넌스 회복, 나아가 무디어져 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경종을 울린 데서 죽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립대 총장 선출 방식에 대한 논의의 틀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거용 학술단체협의회장(상명대 교수)은 "간단히 국립대 총장 직선제만의 문제로 좁히려고 하는 시도가 있는데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간선제로 뽑았는데도 과거 이력을 조사해 1년 넘게 총장 임명제청을 하지 않는 공주대나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를 보면 교육부가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동시에 직선제를 유지하겠다며 당선된 총장이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려고 약속을 뒤집었는데도 구성원들의 반응이 없는 것에 함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회장은 "조금 폭넓게 보면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등 정치적으로도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흘러가는데도 학생들이나 시민들의 인식이 무디어져 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들어 있다고 본다"며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종을 우리  사회에 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부산대 교수의 선택을 보면서 총장 직선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목숨까지 던져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갖는 가치를 봐야 한다고 교수단체들은 강조한다. 국립대에서는 대학 민주화의 핵심이 총장 직선제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서중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성공회대 교수)는 "교육부는 대학을 자기들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다양한 장치로 압박을 해왔는데 가장 걸림돌이라고 본 게 총장 직선제였다"며 "1차적으로는 부산대 총장 직선제 문제로 고민을 시작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교육부 행태를 보면서 교육부와 대학의 자율성 충돌이라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어 김 회장은 "직선제에서는 구성원 지지를 받아 총장이 되기 때문에 구성원 의견을 무시 못하는 측면이 있어 교육부가 정책을 강제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최근 공주대나 한국방송통신대 사태를 봐도 직선제를 포기하고 교육부 눈치를 보도록 유도해왔는데 대학을 통제하려는 교육부와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성원 요구가 부산대에서 충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직선제 유지를 내걸고 당선했던 총장이 계속 교육부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공약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상을 보면서 이런 극단적 조치를 통해 사회에 경각심을 주지 않는 한 교육부가 대학을 통제하려는 자세를 바꾸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국 사립대 교수(협의)회 모임인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또한 총장 직선제가 가지는 민주적 거버넌스에 의미를 두었다. 박순준 사교련 이사장(동의대 교수)은 "총장 직선제라고 하니까 단순히 뽑는 문제라고만 보는데 국립대에서 총장 직선제는 대학 운영에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확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국립대에서는 총장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총장을 제대로 뽑는 데 힘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며 "총장을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구성원이 대학 운영에 참여하고 참여에 대한 책임을 구성원들이 함께 나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그는 "직선제에서 총장은 자기를 뽑아준 구성원들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누른다고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며 "결국은 교육부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총장에 앉히기 위해 직선제를 없앤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총장 직선제 수호'를 요구하며 투신한 부산대 교수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 배경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교육부는 참여정부 때부터 국립대를 민영화하려는 법인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성과가 별로 좋지 않다"며 "결국은 총장이 교육부 정책대로 움직여줘야 하는데 총장 직선제 폐지를 중심으로 하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은 국립대를 법인화, 민영화로 가기 위한 우회정책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모든 국립대를 교육부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총장 임명제로 가야 하고 지금은 중간단계인 간선제, 추천제"라며 "국립대가 정부 의도대로 가느냐 가지 않느냐 하는 갈림길에 지금 국립대가 서 있고, 그런 교육부 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총장 직선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게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시간강사들의 모임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임순광 위원장(경북대)은 "부산대 사태 뒤에는 대학을 정부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대학평가지표가 깔려 있고 결국은 대학 구조조정과도 맞물려 있다"며 "교육부가 '돈'과 '행정력'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려 하고 있고 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학교수뿐 아니라 초·중·고 교사들도 참여하고 있는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부산대 교수의 죽음을 계기로 총장 선출 제도에 대해 논의의 장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비극적인 일이 생긴 데 대해서는 모든 교육계가 깊은 애도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총장 직선제로 가야 한다는 등식을 형성하기에 앞서 국립대 총장 선출 방식에 대해 충분한 논의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수단으로 강하게 드라이버를 걸긴 했지만 총장 직선제는 교직사회의 갈등과 같은 많은 폐해를 안고 있었다"며 "간선제 또한 추천위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운에 따라 총장이 선출될 수 있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폐해가 많았던 직선제 회귀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변인은 "총장 선출 방식은 대학의 다양성,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고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서도 안된다"며 "직선제, 간선제, 혼합형태 등 대학별로 다양한 선출 제도를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제시할 수 있게 교육부도 교육단체와 협의해 지혜를 모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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