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법칙’ 빌미로…‘학교 내 문제’ 이유로

박주연 기자

“전임교수 많아야 평가 때 높은 점수”…대학은 꼼수

“재임용 거부 때 소청심사권 있다”…교육부는 방치

■대학들의 ‘치킨게임’

“학생 수 감소와 등록금 인하로 학교 재정은 제한돼 있는데 교육부의 각종 대학평가에서 전임교원 확보율이 중시되면서 대학들이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채용으로 일종의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서울 4년제 사립대학 ㄱ교무처장의 푸념이다. 그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수의 확대 채용이 궁극적으로 교원의 사기 및 고등교육의 질 저하, 교원 간 갈등 유발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을 알지만 대학 역시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이 같은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임교원 확보율(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은 교육부의 대학기관인증평가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배점이 높은 항목이다. 이들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대학은 국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 퇴출(대학구조개혁평가의 A~E 등급 중 하위 D·E 등급 대학)까지 가정해야 한다.

‘생존의 법칙’ 빌미로…‘학교 내 문제’ 이유로

■“재정 핑계로 저임금·불안정 고용”

출산율 저하로 2023년 고교 졸업생 수는 40여만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3학년도 대학 입학정원 56만여명에 비해 16만명 적은 숫자다. 정부는 향후 10년 내에 대학 입학정원을 16만명 감축하기 위해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ㄱ교무처장은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고용을 통해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4년제 대학의 ㄴ교무처장은 “취업을 강조하는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에 따라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을 ‘산학 중심’으로 선회한 것도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채용 확대의 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즉 정부 방침에 맞춰 산업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려다 보니, 현장 경력은 있으나 연구능력은 검증되지 않은 이들을 교원으로 채용하게 되고, 그 결과 정년트랙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학 측의 해명은 ‘저임금의 계약직 교원을 늘리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매년 많은 적립금을 축적하는 등 불합리한 예산 운용으로 비판받는 사립대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저임금·불안정 고용을 일반화하는 건 뻔뻔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교육부 “우리가 관여할 일 아냐”

정작 교육부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확산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신규임용 전임교원 2명 중 1명이 비정년트랙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현석 교육부 대학정책과 사무관은 “비정년트랙이 법률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구분할 규정이 없는 데다, 급여의 경우 사학과 교원 간의 계약사항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임교원은 계약 종료 시점에 학칙에 따라 심사 후 재임용될 수 있는 기대권을 갖고 있고, 불합리한 이유로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때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년트랙이든, 비정년트랙이든 이 같은 권리만 충족되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 직무유기…실태조사 나서야”

백정하 한국대학교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교육부의 해명대로라면 법에도 없는 형태를 대학이 운용하도록 방치한 것으로 교육부의 직무유기”라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비정년트랙 교원 임용과 관련한 지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교육부는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3조(교원 보수의 우대)가 유명무실화하지 않도록 대학평가 때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를 받는 전임교원만을 전임교원 확보율로 산정하든지, 일정 수준 이상을 받는 전임교원과 그렇지 못한 전임교원 간에 가중치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특별법 제3조 제2항은 ‘학교법인과 사립학교 경영자는 그가 설치·경영하는 학교 교원의 보수를 국공립학교 교원의 보수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전임교원의 보수 수준이 반영되고는 있다. 하지만 전국의 평균연봉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대학 전임교수 간 급여 차이가 지나치게 클 경우에 한해 감점을 주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학교 재정상황이나 급여 책정 원칙 및 사유 등을 검토해 전임교원 확보율을 인위적으로 높인 것이 확인되면 점수를 깎겠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태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교육부는 더 이상 직무를 방기하지 말고 대학에서 남발되고 있는 비정년트랙 교원의 임용 실태 파악을 위한 구체적 실태조사에 나서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책 개선은 물론 법령 개정 등 대책 수립을 국회와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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