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3. 교육부 「2020학년도 1학기 대학 학사운영 권고안」에 대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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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3-05 13:45 조회2,689회 댓글0건본문
코로나19와 대학의 합리성
혐오는 공포를 먹고 자란다. 사람들은 공포심에 짓눌릴 때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자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가 발병하자 중국인을 혐오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31번 환자가 나오자 신천지에 대한 혐오가 광범하게 퍼졌다.
코로나19는 전파력은 높지만 치사율은 낮다고 한다. WHO 다국적 조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한에서 발생한 환자들의 치사율은 5.8%인 반면, 다른 지역 환자들의 치사율은 0.7%에 그쳤고, 1월1일부터 1월10일 사이의 치사율이 17.3%였던 반면 2월1일 이후 감염된 환자의 치사율은 0.7%였다. 전파가 진행될수록 독성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발견률이 100%였을 크루즈호의 치사율은 0.57%였다. 대한병원협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치사율을 0.5%로 발표한 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감염자의 80% 정도는 대부분 가벼운 증상에서 그쳤다는 점이다. 심지어 코로나19 환자의 절반 이상이 정상 체온이라고 한다.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열조차 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것이 견딜만한 병이란 말이다.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학 전염병학 교수는 1년 내에 전 세계 성인의 40-70%가 감염될 것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가볍게 앓고 지나가거나 무증상자로서 지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간 페스트가 아니다.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만 과도한 공포심은 경계해야 한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자가 대기 중이던 환자들이 사망한 뒤에야 정부는 중증환자를 우선 입원시키도록 치료체계를 재편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게 될 대다수 환자들 때문에 신속히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할 진짜 환자들이 죽음에 내몰린 것이다. 전파력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 낳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서울시는 이만희 총회장과 12개 지파장들을 살인죄와 상해죄, 감염병 예방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군인들까지 나서 화생방 제독차량으로 거리를 소독한다. 공기 중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섯 장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 확진자의 동선을 발표하는 이유는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의 신고를 받기 위한 조치인데 확진자가 다녀간 상가는 초토화되었다.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이 사람들의 합리성을 집어삼켰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바이러스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재난은 늘 사회적 약자를 먼저 공격한다. 첫 사망자는 청도 대남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던 장애인이었다. 대학은 약자를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차별과 배제를 할 것인가? 개강이 두 주 연기되면서 대학 강사들은 벌이를 걱정하고 있다. 강사들은 정규직 교원과 달리 수업이 없으면 그만큼 벌이가 없어지게 되고 유급휴가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개강이 더 연기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미 많은 대학들이 개강을 하더라도 두 주간은 온라인 수업을 강제하기로 하였다. 강사들은 온라인 수업에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제작하는 데 상당한 품이 들어가지만 대학당국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이지만 대학은 차별적이다. 아플 때 정의의 기준은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 상처의 차이여야 한다.
코로나19는 감염력은 높지만 치사율은 낮은 질병이다. 고령자와 기저 질환자에게는 위험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감염병이 돌아도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수업은 형식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감염병으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육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질병관리본부장은 그동안 단 한 차례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매일 언론 정례 브리핑을 하였다. 대학 강의실은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아멘을 외치는 곳이 아니다. 대학 강의실은 신천지 성전이 아니다.
교육부는 전국의 대학들에 재택수업을 권고하면서 '집합수업'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교육부의 이번 권고는 대교협과 전문대교협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대학은 그동안 강사들의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왔다. 교육부는 (가칭)원격교육운영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원격교육지원센터를 지정・운영하기로 하였을 뿐 아니라 교육부 및 대교협, 전문대교협 공동 TF 운영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도 함께 검토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대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학이 가져야 할 온당한 자세는 온라인 강의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면대면 강의를 원칙으로 하되 감염을 차단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강의실이 전파의 장소가 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대학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대학은 너무 쉽게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보고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해도 늦지 않다.
대학은 그 어디보다 이성적이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개강을 연기한데 이어 비대면 강의를 확대하는 것은 대학이 앞장서 사회적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행위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지는 못할망정 더욱 병들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혐오를 반대한다면 공포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과도한 공포심을 경계하도록 하는 것은 대학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이다. 대학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2020년 3월 3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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