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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5만6440원, 비정규 교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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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07 11:42 조회1,7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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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5만6440원, 비정규 교수를 아십니까?

[비정규교수의 위기, 대학과 학문의 위기 ①

찬 바람이 몹시 불던 초겨울. 농성천막으로 가득한 국회 정문 앞이 비좁아 건너편 공원 귀퉁이에 소박하게 농성장을 설치했다. 농성 주체는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하 비정규교수노조)이다. 농성의 명분은 사립대학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사업비를 복원하고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강사처우개선비'를 말한다. 강사처우개선비는 대학 강사들의 고용이 너무 불안정하고 처우가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2019년 8월부터 한시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빈곤한 비정규교수들

 

대학은 한 학기에 15주를 수업한다. 나머지 11주가 방학이다. 1년에 22주가 방학이다. 대학 강사는 방학에 수입이 전혀 없다. 따라서 방학을 싫어하는 몇 안 되는 직종 중 하나다. 그렇다고 강의료가 많은 것도 아니다. 강사는 1개 대학에서 6시간 이하 강의를 원칙으로 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사립대학 강사의 한 학기 수입은 5백10여만 원에 불과하다. 2022년 기준 시간당 강의료가 평균 5만644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개 대학에서 총 12시간 강의를 하면 1년 수입이 불과 2000여만 원이다. 3개 대학에서 강의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사립대학 강사의 연봉은 딱 이 정도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국공립대 강사의 경우는 1시간 강의료가 9만여 원 정도 되기 때문에 이들의 연 수입은 2개 대학을 기준으로 3200여만 원 정도 한다. 이러한 계산은 단순 계산에 불과하다. 그들의 속내는 더 복잡하고 열악하다. 대학 내 강사들의 차별이 그만큼 심하다. 이들에게는 호봉제도 성과급도 없다. 강사 경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1년, 10년, 20년, 30년 모두가 동등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이런 식으로 준수할 줄은 몰랐다. 대단한 발상이다. 빈곤의 평등함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22주 방학 중에서 4주치에 해당하는 강의료와 퇴직금 적립액 70%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래도 18주는 수입이 없다. 그렇다고 많이 준 것도 아니었다. 편성된 사업예산은 2019년 152억 원, 2020년 429억 원, 2021년 369억 원, 2022년 264억 원이었다. 그때마다 일관성 없는 예산 편성이다. 해마다 변동이 심했다. 선심성 예산이다 보니 멋대로였다. 그런데 이 예산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재부는 "사립대의 인건비는 대학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는 입장이다. 돈 있고 땅 부자인 사립대가 돈이 없다고 징징대는 현실에서 기재부의 입장은 매우 무책임하다. 교육부는 "(강사법)제도의 안착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제도적 안착을 주장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현실 인식은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허접하다. 

 

이제는 정부의 무원칙, 무능함, 무능력에 대해 화가 나지 않는다. 능력과 경쟁만이 난무하는 시대에 '교육 백년지대계', '교육 공공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도 사치에 가깝다.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잘 버텨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비정규교수노조는 해마다 상반기에는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하반기에는 국회 앞에서 농성한다.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다. 주변에서는 습관이라고도 하고 연례행사라고도 농담 섞여 말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같은 목적으로 수년 동안 농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비정규교수는 말 그대로 무늬만 '교원'인 단기 계약직 비정규 지식노동자·교육노동자·연구노동자일 뿐이다. 

 

교육 공공성은 학벌주의 폐기로부터 

 

곧 겨울방학이다. 부양가족이 있는 외벌이 비정규교수는 방학에 알바를 하지 않으면 가정 경제에 치명적이다. 카드 돌려막기도 지긋지긋하다. 그나마 맞벌이 이거나 1인 가구는 형편이 쬐금 나은 편이다. 비정규교수들은 불안정 고용으로 인해 맞벌이가 거의 필수 조건이다. 연구자들의 1인 가구 증가 이유다. 대학 강의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학이 되면 한숨은 늘어나고 시름은 깊어진다. 

 

그렇다고 비정규교수들의 고용안정이나 처우개선에 대한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가 분단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저변에는 교육모순이 깔려있다. 교육모순의 핵심은 학벌주의이다. 학벌주의가 사회 저변에 착근되어 있어서 비정규교수들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대학과 학계만큼 차별이 심각한 곳도 드물다.

 

분야별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SKY출신의 미국 유학파는 고용문제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히려 모교로의 귀환이 관건이다. 미국 학위 소지자가 아니어도 된다. 유럽도 좋고 국내에서 학위를 해도 타 대학 출신보다는 항상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학벌이 능력주의로 작용하는 곳이다. 연구자는 넘쳐나지만 대학에서의 강의는 제한적이다. '독립연구자'가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교육 공공성이 중요하다면 학벌주의 폐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본령과 희망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라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래서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연구자가 되기를 잘했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의 벅참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면서 주고받는 소통의 신박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의 권리가 생존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이 일깨워 준다. 우리의 권리는 학생의 존재가 말해준다. 학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가 세상에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들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체 뭘 위해 헌신하고 있는 걸까. 상처받고 힘 빠지고 회의도 들고 전망도 없지만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수 있다. 우리가 싸우는 건 불합리한 제도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싸움을 위해서 30여 년 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학에는 강사, 객원교수, 대우교수 등 수많은 비정규교수가 존재한다. 어림잡아 연구자의 과반수가 비정규교수인데 노조 가입을 주저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조차도 대학노조 및 교수노조와 헷갈린다. 대중들은 노조의 존재조차 모른다. 노조로서의 존재감이 약한 것이다.

 

결국 노조의 존재감은 활동과 규모가 말해준다. 그런데 비정규교수들의 노조 가입률이 매우 저조하다. 노조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오해도 있을 것이다. 비정규교수들이 비겁하고 패배주의에 빠져있다는 평가도 있다. 어차피 가진 것도 없는데 대차게 싸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하지만 그건 현실의 일부만 아는 소리다. 지금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 다음은 선택지가 없다.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특별히 변한 것도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기본적인 책무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본령은 조합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연구자에게 권리향상은 연구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연구안전망 확보는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이 핵심이다. 하지만 30여 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비정규교수노조의 힘찬 투쟁의 결과는 결국 제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결국 기본적인 책무가 가장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비정규교수들의 연구안전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좀더 신중하고 세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조합원들을 생각하고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치열하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팍팍한 삶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투쟁하지 않으면 권리를 찾을 수 없다. 누구를 상대해도 그 상대는 강할 것이다. 상대가 강한 만큼 변화의 열망은 뜨거울 것이고, 그 뜨거움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권리를 찾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윤에 질식당하는 학문생태계, 노동조합이 조합원들과 같이 바꿔나가도록 하자.

 

2023112813123919127_l.jpgⓒ최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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