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교수의 노동을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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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12 03:42 조회1,888회 댓글0건본문
비정규교수의 노동을 존중하라
[비정규교수의 위기, 대학과 학문의 위기] ⑥
지금의 대학 강사는 2019년 강사법이 개정되기 전에 '시간강사'였다. 어느 단체에서 프로젝트 참여 의뢰를 받아 정해진 수순대로 이력서와 짧은 자기소개 글을 제출하면서 내 정체성을 '시간강사'라 표현한 적이 있다. 글을 받은 담당자는 난색을 보이며 그보다는 '연구자'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생각 없이 쓴 표현이 아니었기에 반박하려다가, 어떤 이유인지 알 것 같아 요청대로 수정해 줬다.
그즈음에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잠시 망설이곤 했다. 강의하고 번역하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되 학계에서 활동하지는 않는 사람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연구하지만 논문을 쓰지는 않으니 '연구자'의 범주에 잘 맞지 않는다. 번역가라고 하기에는 그보다 강의에 쏟아붓는 노동의 비중이 더 크다.
나의 직업은 '강사'다
나는 11년 차 인문사회계열 비정규교수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3년간의 연구소 계약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강의가 주된 업무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들 앞에서 내 정체성을 규정해야 할 때 당당하게 '강사'라 말한다. 강의는 내가 수행하는 몇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가장 오래 해온 일이자 꾸준히 능력을 쌓아온 일이고, 내가 종사해 온 이 직업이 주로 강사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대학 교양 강의를 맡아왔다. 첫 몇 해 동안은 다른 많은 비정규교수와 마찬가지로 이 직업을 그저 지나가는 단계로 생각했다. 몇 년 후 국립 연구소 연구원으로 이직을 결정하면서 더 이상 강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지만, 3년의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그다지 보람을 느낄 수 없었던 연구직을 그만두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서 수행한 연구에 미련이 남아서라기보다는 강사라는 직업이 불안정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강의는 전문 분야다
강의는 연구에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전문 분야다. 연구와 강의 노하우를 전적으로 분리할 수는 없지만, 강의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 없이 좋은 강의를 할 수 있는 연구자는 없다. 대학 강의는 크게 교양 강의, 학부 전공 강의, 대학원 강의로 나뉘고 그 각각은 매우 다른 교육학적 방법론이 필요하며 그 중요성에서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교양 강의를 예로 들어봐도 다른 유형의 강의보다 덜 중요하거나 더 쉽지 않다. 프로그램을 짜는 일부터 많은 수의 학생을 온전히 강의에 집중시키는 것은 결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연구를 통한 강의 콘텐츠의 개발과 업데이트뿐 아니라, 강의 규모에 따른 방법론적 고려와 적절한 형태의 운영, 대체로 많은 수의 수강생으로 짜이는 교양 강의의 특성에 맞춘 소통 방법과 참여 유도 방식의 개발 없이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대학의 현실
모든 교양 강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비정규교수에게 맡겨지고, 대다수의 경우 사용자 측에서나 노동자 측에서나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자리로 여겨지기 때문에 강의의 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양한 이름으로 대학교 내에 교양 과목을 전담하는 대학이 설립되었고 그중에는 교재 개발이나 지속적인 프로그램 관리가 이루어지는 곳도 있지만, 어쨌거나 교수자의 능력과 성과는 고려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강사법 실시 이후에는 기껏해야 공채 지원이나 계약 연장에서 부분적으로 유리한 입지로 작용할 뿐이다.
연구 수행의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논문을 쓰는 것도 길이지만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는 것은 또 다른 길이다. 교수직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연구논문의 형태로 요구되는 성과를 내는 데에는 커다란 노력과 에너지가 투여되며, 이때 강의는 실제로 부수적인 일이 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처한 위기의 중요한 한 요인으로 보인다.
흔히 주당 15시 수 이상의 강의를 맡는 강의전담교수는 과중한 업무에 괴롭고, 강사법 실시 이후 주당 6시간을 초과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게 된 강사들은 업무가 없어 괴로우며,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근간은 교육에 대한 고려도,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도, 학문적 특수성에 입각한 전통도 아니며, 단지 경제 논리일 뿐이다.
비정규교수가 수행하는 노동이 학문 노동의 다양한 유형 중 하나로 인정되고 보장받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논문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연구와는 또 다른 유형의 연구가 필요한 노동, 경험과 노하우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결과를 산출하는 노동, 학문과 학생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노동, 많은 경우 인상비평에 좌우되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로만은 측정할 수 없는 노동에 대한 이해와 인정 없이 비정규교수가 합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나는 '강사'라는 명칭을 '교수'로 대체해야 하는 사회보다는, 학생들에게서 굳이 '교수님'으로 호명되기를 바라야 하는 사회보다는, “저는 강사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존중을 표현하는 '선생님'이라는 오랜 우리말 호칭이 차별을 내포하지 않고 호명되는 사회를 더 절실히 바란다.
ⓒ비정규교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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