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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의 실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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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9 11:23 조회3,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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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여, 시간의 굴레를 벗고 교원의 날개를 활짝 펴라

 

                                                                                                                                                                           -  홍영경 -

 

우리나라 대학교수는 크게 전임강사에서 정교수에 이르는 전임(정규직)교수와 이들을 제외한 갖가지 이름의 비전임(비정규직)교수로 나뉜다. 비전임교수에는 초빙, 대우, 겸임, 연구, 강의전담 등의 단기계약교수와 시간강사(학교에 따라 촉탁강사, 외래교수라고도 한다)가 있으며, 시간강사는 본업이 따로 있는 강사와 다른 직업이 없고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는 대학강사를 뭉뚱그려 일컫는다. 현재 비정규직대학교수의 대부분은 대학강사이고, 이들은 정규 대학교육의 절반 정도를 담당한다. 대학교육자의 주된 활동이 전임이든 비전임이든 강의와 연구라는 점에서, 대학강사는 전임교수와 동일한 임무를 담당하는 엄연한 교육주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법과 왜곡된 제도 때문에 대학강사는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몸담고 있는 대학사회에서 뜨내기가 되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강사는 시간강사?

 

대학강사를 시간강사라 잘못 칭하는 것은 대학교원을 규정하는 교육법에서 비롯된다. 교원이란 학생을 직접 지도․교육하는 자로 역할이 막중하므로 헌법은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특별히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교원은 고등교육법 제14조 제2항에서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제17조는 시간강사를 교원의 범주에 넣지 않으면서 교육 또는 연구를 맡길 수 있게 한다. 이 시간강사를 같은 법 시행령 제 7조에서는 “교육과정의 운영상 필요한 자"라 한다. 교육과정의 운영상 필요하다는 이 모호한 말을 교육인적자원부는 “특수한 교과목 운영, 담당 교수 휴직 및 해외 파견 등으로 인한 공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교육에 차질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대학이 특수하고 한정된 범위에서 타교 교수나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를 일시 위촉할 수 있게끔 시간강사 항목을 설치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는 겸임교원을 두는 취지와 다를 바 없어 굳이 시간강사 규정을 유지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조항을, 대학들은 교육부의 묵인 아래 전임교수 확보율을 50~60%대로 낮추고 그 부족에서 생기는 일반교과과정의 큰 공백을 시간강사에게 떠맡기는 편법적 학사 운영에 이용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임교수의 수와 맞먹거나 더 큰 수로 늘어난 흔히 ‘전업 시간강사’라 불리는 대학강사는 이제 대학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대학교육의 막대한 부분을 지속해서 맡으며 실제 대학교원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대학강사는, 시간강사를 두게 한 본래의 취지와는 동떨어져 애초의 시간강사 개념의 틀에는 끼워 맞춰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학강사의 지위 및 자격에 관한 규정이 현재의 고등교육법 어디에도 없음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일뿐더러 대학강사를 불법 교육자로 만드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주무부서인 교육부가 문제의 핵심을 방치하고 있으니, 각 대학은 강사임용에 관한 내부규정에 교육법의 시간강사 조항을 십분 활용하여 “전임교원이 아닌 자로 시간제로 교과목의 강의와 이에 따르는 지도를 담당하는 자"를 시간강사로 못박아 시간의 족쇄를 채우고 있다.

 

대학강사는 베짱이 단시간 노동자?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노동자로 분류되는 대학강사는, 시간제 규정 때문에 그 교육노동 가치가 여기저기서 부당하게 절하된다. 대학교육자 중 전임교수의 의무 강의시수는 법에 주당 9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이는 일반 사업장의 주당 40-44인 노동시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으로 보이지만 교육노동은 강의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의 이외에 연구 그리고 강의와 관련한 수많은 업무(강의계획서 작성, 교재연구 및 학습지도, 과제물 평가, 시험출제, 답안지 채점, 성적평가 등)의 처리에 많은 시간이 드는 특수성이 있다. 이는 강사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학강사의 노동가치를 평가할 때는 강의실에서 일하는 시간만을 손꼽았다. 노동부에서는 대학강사의 강의시간(보통 한 대학에서 9시간으로 제한한다)을 총 노동시간으로 단순하게 환산하여, 대학강사를 일용 잡급의 1주간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로 해석한다. 보건복지부도 “월 80시간 이상의 근로를 하지 않는 자"라며 직장 국민연금 가입을, 또 타당한 근거 없이 억지로 시간강사 예외조항을 만들어 강사의 직장 의료보험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이처럼 ‘시간땜장이’로 그릇 알려져 돌아다보는 곳마다 노동자 권리마저 바싹 줄이니, 대학강사는 일도 몇 시간 안 하는 ‘베짱이’나 되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고용보험과 직장 의료보험․국민연금의 가입과 퇴직금 지급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

 

대학강사의 고용정책: 학력은 높게, 임금은 낮게, 해고는 쉽게

 

법과 사회보장제도의 보호 밖에 놓인 단시간 노동자의 지위는 곧 심한 고용불안을 뜻한다. 대학강사는 학교와 근로계약이 아닌 대개 6개월 위촉(남에게 부탁하여 맡긴다는 뜻)의 형태로 고용된다. 주로 추천을 통해 강의를 받으면서 강사의 의무를 준수한다는 서면이나 묵시에 의한 서약을 할 뿐이다.(강사를 공개 채용하는 학교도 더러 있으나 대우는 평균수준 아래로 나을 게 없다.) 강사임용자격은 갈수록 높아져 보통 박사학위 소지자나 교육경력이 오래된 박사과정 수료자들이건만, 그렇게 ‘교수님’이 되는 강사는 한 학기 고용인이므로 강의가 연속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다음 학기의 고용여부는 5월과 11월 경, 대학이 시간표를 작성할 때 결정되며 강사의 ‘재계약’은 대개 학과나 학부 조교의 ‘구두’ 통보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에 연락이 없으면 새 학기에는 맡은 강의가 없으니 이번 학기 성적 처리를 끝으로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이미 배정된 강의를 개강을 얼마 앞두고 날벼락 맞듯 까닭도 모른 채 박탈당하기까지 한다. 또 요즘 들어서는 대학평가에서 그 대우가 시간강사와 거의 비슷한 겸임교수 등이 9시간을 강의하면 전임교수 1인을 채용한 셈 쳐주는 기발한 산술법이 있어 구조조정이란 외침 아래 대학강사에게는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렇듯 ‘잠재 실업자’인 대학강사에게는 학기마다 신분불안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게다가, 교육노동의 대가가 철저한 시간급으로 낮게 돌아오니 경제적 고통 또한 대학강사를 숨막히게 한다. 시간당 지급은 사십여 년 전 군사독재 정권이 만든 규정이건만, 대학의 강사 의존율 50%를 육박하는 오늘날에도, 교육부가 강의료를 현실화한다며 2000년에 그 규정을 폐지하고 대학의 총․학장에게 지급기준을 위임한 뒤에도, 대학들이 여전히 받드는 계산방식이다. 대학이 이렇게 ‘전통’을 중시하는 데는, 국․공립대의 강의료를 여전히 시간당으로 책정하는 교육부의 모순된 태도가 한몫하고 있다. 강의료를 현실화할 수 있는 책정기준을 마련할 생각도 없이 내린 그런 조치에 시간강사로 옭매여 강의가 없는 방학이면 강의료 지급도 멈추는 대학강사들의 여건이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강사에게는 26주인 한 학기에 보통 16주 분의 강의료가 지급될 뿐이다. 이나마도 몇몇 ‘셈이 밝은’ 대학들에서는 공휴일이나 시험기간을 빼 더 오그라들기도 한다.

 

이렇듯 똑같은 틀 속에서 올해의 시간 강의료가 대체로 작년에 비해 10%이상 올랐다지만 대학강사가 전임교수처럼 9시간만 강의하여 생계를 잇고 연구를 해나가려면 여전히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4년제 대학의 평균 시간 강의료는 2만 8,000원 정도로 이를 주당 9시간 32주의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800만원이고 월 66만원이 나온다. 이 수준은 전임교수의 연봉의 1/15~1/5로서, 같은 일을 하는 어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도 볼 수 없고, 어느 OECD 국가의 전임교수와 비전임교수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 커다란 임금격차로, 군사정권에서 열악해진 강사들의 처우가 문민, 국민, 참여 정부로 이르는 민간 정부에서도 별반 나아진 게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주노총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조건으로 산정한 2003년도 1인 가구의 표준 생계비 127만 1,616원에 절반쯤 되는 수준이니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강사는 기초생활마저 하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강의료와 고용불안은 대학강사가 보통 두 학교 이상 ‘보따리 장수’를 떠나거나 다른 일을 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학부제 도입 이후 특히, 노동 유연성이 유독 심한 대학강사는 한 대학에 출강할 경우 곧 ‘참 실업자’의 신세로 뚝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다 한 학교의 강의료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다. 이런 불안과 궁핍함을 덜어내고 연구자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20시간이나 또는 그 이상 출강하는 경우가 있는데, 몇 배 더 드는 강의 준비시간과 이곳저곳 오가며 길에 쏟는 시간까지 합하면 그 강사는 일주일 내내 강의에 치여 피곤하게 보낸다. 반면에 강의가 별로 없는 강사는 과외지도, 번역, 심지어는 막노동의 일거리라도 찾아 나선다. 이러니 대학강사는 밥벌이를 위해 부담스런 강의를 하거나 강의와 연구에는 별 도움이 못 되는 일에 내몰려 진이 빠진다. 어느 쪽이든, 연구역량이 소모되면서 대학강사는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고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외길을 가기가 고달프다.

 

왜곡된 강사제도의 또 다른 피해자는 학생

 

대학강사들이 겪는 안타깝고 암울한 현실은 고등교육법에 그 지위규정이 없어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대학강사는 전임교수와 나란히 대학교육의 한 주축을 이루지만 법의 사각지대에서 불합리하게도 시간강사 조항에 얹혀 ‘시간품팔이’로 푸대접받는다.

 

이는 법의 미비가 곧바로 대학들의 아무 거리낌없는 강사 노동력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회계는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채 무조건 재정이 어렵다는 구실을 입에 달면서 교수가 부족한데도 채용하지 않고 시간강사의 이름으로 그 고급노동을 헐값으로 쓴다. 강의료의 합리적 책정기준 마련은 고사하고, 강의실 밖과 방학기간에도 지속되는 강사들의 교육 및 연구 활동은 모른 채하며 정부의 ‘협조’ 아래 대학강사의 불안정을 다소라도 덜 수 있는 사회보장의 분담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대학이 이렇게 강사의 품삯을 싹둑 깎아 부당이득을 거두는 불공정한 터전에서 생계가 위태로운 강사는 이 대학 저 대학에 나가며 지나치게 많은 강의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를 두고 '공급이 수요를 앞선다'는 엉터리 시장논리가 목소리를 높이며 강사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려 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대학은 강사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불의를 일삼는다.

 

대학이 이런 홀대를 하면서 교육자로, 근로자로, 대학강사의 권리를 존중할 리 만무하다. 많은 학교가 강사를 한식구가 아닌 객식구 대하듯 연구공간의 제공을 꺼리고 도서관 이용을 까다롭게 하여 강의가 끝나면 강사는 밀려나듯 교문을 떠난다. 또 강사임용규정에는 의무만 강제하고, 학교가 주관적 잣대로 강사를 언제라도 갈아 치울 수 있는 항목들을 열거하여, 강사에게 교육자의 품위를 요구하는 대학이 오히려 강사의 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강사의 해촉은 위촉보다 더 쉬워 근로기준법에 의한 해고예고의 절차를 밟아 주는 예가 거의 없고 그 해고 사유를 알려 줄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여러 대학이 그 수명을 ‘통산’ 2~3년, 길어야 5년으로 정해 놓고 폐기처분하듯 대학강사를 서슴없이 내친다.

 

대학강사에 대한 냉대는 강사 개인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의 절반을 책임진 사람들의 능력에 제값을 치르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풍토에서 대학교육이 나아질 수 없다. 막대한 재원을 들여 길러낸 학자가 제 곳에서 힘을 다하지 못하니 국가자원의 낭비는 물론, 이는 결국 학생이 양질의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을 낳는다. 따라서 강사의 열악한 연구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학생들 또한 그 피해자로 남는다.

 

강사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은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끌어안기

 

대학교육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교권이 없는 대학강사의 문제를 제대로 푸는 길은 대학강사를 교원에 넣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대학강사직은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거치는 자리가 아니라 대학교육의 한쪽날개를 펼치는 독자적인 직업이다. 대학강사는 연구와 교육을 정규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고등교육법 제 15조 2항의 “교원은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되 학문연구만을 전담할 수 있다”는 교원의 임무를 바로 자신의 고유한 역할로 삼는 전문직업인이다. 대학이 교육의 절반을 믿고 맡기는 것도 실은 이런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인 만큼, 대학강사가 필요한 존재라면 시간급으로 차별하는 폐습을 당장 없애고 그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교육자요, 연구자로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역할에 걸맞은 지위를 찾아주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끌어안는 길밖에 없다.

 

이는 지난 10월 30일 김동애 전 한성대 대우교수의 퇴직금 청구 항소심 승소 판결이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대학강의의 특수성을 인정하여 대학강사가 하는 일이 전임교원과 학사행정업무 등의 양적인 면은 다소 차이가 난다 해도 대학교육의 핵심인 강의 및 강의준비를 위한 연구와 자료 수집, 학생평가 및 그와 관련된 학사행정 업무 처리 등의 질적인 면에서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다. 강사들의 노동이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단시간 노동이 아니라 강의실 밖에서 연구를 하고 학사업무도 처리하는 전임교원에 준하는 노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동안 대학강사에게 온전한 노동자 권리도 누리지 못하게 만든 ‘시간’의 족쇄를 벗기고 그 능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도록 고등교육법 제17조의 시간강사 조항을 없애고 대학강사를 제14조에 교원으로 들일 때이다.

 

이를 하루바삐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자라는 허울 아래 계약서 한 장 없이 강단에 선 6만 대학강사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 대학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민주화, 강사의 처우개선을 기치로 1990년 결성된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현 한국비정규직대학교수노동조합)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교원지위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학재단의 영리추구에 교육부가 뒷짐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사들이 힘을 모으지 않고는 잘못된 강사제도를 타파하기 어렵다. 교수임용의 꿈에 현실을 외면하거나 교권도 없는 교육자임 깨닫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거나 남이 대신 싸워주기를 바라며 떨어져 구경만 한다면 강사의 권리 찾기는 구호로 끝날지 모른다. 이제껏 입다물었던 강사들은 대학교육의 주체답게 학문후속세대가 아닌 전임교수들과 어깨를 맞댄 학문의 동반자로서 스스로의 위상에 맞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리하여 대학강사의 교원지위가 법으로 보장되면 교육부와 대학은 적정한 수업부담과 보수책정의 기준을 마련할 테고 다른 정부기관과 협력하여 합리적인 복지정책을 세울 것이다. 그리되면 대학강사는 단시간 노동자의 낙인을 지우고 고용불안과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긍지와 사명감을 가진 연구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요, 대학교육은 그만큼 질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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