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와 비정규직법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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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9 11:29 조회3,474회 댓글0건본문
대학강사와 비정규직법
2009년 6월 11일 - 홍 영 경 -
대학강사는 하는 일이 교육과 연구지만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원이 아니다. 또 그들에게 강의를 맡기는 대학도 전혀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자격으로 학생들 앞에 세우는가? 간단히 말해, 교수와 동등의 교육 능력은 인정하나 그 역할에 맞는 대우는 해주기 꺼려 4개월짜리 시급으로 쓰는 비교원.
수강 신청 안내 책자에 보라. 담당교수란에 나란히 오른 전임교수와 강사의 '평등한' 명단 배열을. 거기 어디에 강사의 강의가 교수의 강의와 질 차이가 날 것이라는 경고라도 있는가? 그런데도 싸구려 '시간급'으로 대학 정규교육의 절반에 상시 쓰고 있다는 말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사기치고 있거나 노동 착취 두 가지 불의 중 하나를 저지르고 있다는 고백서.
강의실에서 '교수'로 존재를 드러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강사들은 그럼 그 권리는 어디서 보장받을까? 교육법에서 버림받은 그들이 갈 곳은 노동법. 그러나 대학 강의실이라는 일터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지 못한 노동법에서 보면 일도 별로 하는 게 없는 (*교수의 의무 강의 시수는 1주일에 9시간이고 강사도 이에 준하므로 한 대학에서 보통 많아야 1주일에 9시간 강의할 수 있다) '단시간' 노동자 + 부분 기간제(?). 그런 그들에게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는 사치.(임금 노동자지만 직장 의료 보험, 연금 가입은 법이 거부하고 그나마 법이 허용한 고용보험은 대학측이 가입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렇게 교원으로도 노동자로도 서지 못하는 어설픈 존재 대학강사를 어이없게 '배려'하는 법이 2007년 7월 1일 시행에 들어갔으니...
1997년 금융위기의 쓰나미에 우리나라마저 쓸려가자 문민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주십사 손을 벌렸다. 신자유주의 자본을 대변하는 그 국제 금융기관은 돈을 꿔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가혹한 처방을 내렸다. 그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 그 명령을 착실히 따르며 구조조정을 하여 기업들은 평생 직장이던 일터에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나갔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뜻대로 비용이 적게 드는 임시직이 확 늘면서 각종 지표는 경제의 빠른 회복을 나타냈으나 사회 양극화는 심해져 이들 노동자의 생활지수는 질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비정규직 양산으로 재미를 본 자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고용을 더욱 말랑말랑하게 주무르게 해달라 떠들고 조건이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노동에선 고용 보장 요구가 높아지자 정치권이 내놓은 것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법에서 찬밥 신세인 대학강사는 이리 밀리고 저리 떠돌다 덜컥 그 법에 갇혔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그들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법이 시행 2년을 앞두자 발빠르게 대응한 곳이 바로 대학이다.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 정규직으로 본다는 (동법 4조 2항) 규정과 전문적 지식, 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로 (동법 4조 1항 5호)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분야에 종사하는 경우 (동법 시행령 3조 1항 1호) 사용기간 예외 조항을 (*무기한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 이용해 박사 학위 미소지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달리 말해 대학은 법의 목적엔 관심없고 법 규정 적용을 회피할 방법 찾기에 급급하다.
이 법이 대학강사를 '포용'하기엔 무리임은 바로 위 문제의 조항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학교육에는 전문적 지식이 필수다. 일하면서 어쩌다 필요한 게 아니고. 그런데 박사학위자를 무기한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니. 그렇다면 전임교수도 뽑을 필요도 없다는 말 아닌가? 대학이 그런 모순에 몰리지 않으려면 맡은 분야를 성실하게 잘 가르치는 강사를 박사 학위 여부와 관계없이 고용을 보장해 주는 게 마땅하다. 백번 양보를 해서 박사 학위자만이라도 2년째엔 다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어야 맞다. 또 동법 5조는 정규직을 뽑을 때 그 사업장에 종사한 근로자를 우선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전임교수를 뽑을 때 전공자가 있다면 "교수초빙" 공고를 낼 필요없이 그 학교 강사를 우선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대학들은 그건 노동법과는 상관없다 할 것이다.
대학이 일반 사업장과는 달라 적용하려면 거꾸로 해야 할 비정규직법은 대학 경영자 입맛에나 맞을 뿐 그 법에 모든 강사들은 또 한번 그들의 노동가치를 격하당하는 수모를 겪고 하향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강사의 능력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대학들은 법의 모순이나 부당성 그런 것은 알 바 아니고 그저 강사들을 정리하는 호기로 삼고 칼을 휘두른다. 사회 정의와 평등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이 그 법을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2년 마다 내치고 차별을 고착화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 모두 치졸한 작태라 하건만 그렇게 법을 편의에 따라 이용하며 결정을 내리고 따르는 눈앞만 보는 자 대학의 누구인가? 이곳저곳에서 강의하니 별 문제 없고 강사들은 얼만큼 쓰면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는 말이 자신의 얼굴에 침뱉기인 줄 모르는 사람들. 대학 교육을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학 경영, 행정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한 교육의 질이 나아질 수 없다.
지금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는 특히 새로 들어선 정권의 가진 자 위주의 정책에 양극화가 더욱 커졌다. 최저임금 삭감, 일자리 나누기 등 또다시 경제 위기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뒷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최전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어떨까? 그런 이들을 더욱 조이는 데 오용되는 법. 여기에 유탄을 맞은 대학강사. 오늘 그들에게 벌어지는 손쉬운 해고는 대학 사회 또한 약자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풍토임을 보여준다.
결국, 대학강사 문제는 원점으로 귀결된다.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그런 맞지도 않는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빚는 불의, 갈등, 모순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다.
국회와 교육부는 대학강사를 제 역할에 맞게 교육법에서 그 신분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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