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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 태어나는 아이가 효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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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1 11:14 조회3,1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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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 태어나는 아이가 효자?

 [교수신문 가산칼럼]

2015년 1월 14일​                                                                                                                             김경례 한국비저유교수노동조합 정책위원

어느 날, 한 동료 선생님이 다음 학기 강의를 받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뒤이어 터져 나온 한 마디!‘ 방학에 아이를 낳았어야 하는데…….’

대학에서 학기(6개월)마다 위촉과 해촉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강사들은 늘 고용불안의 공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은 그 공포를 현실화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교수라고 하는데,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고용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호명되고 위계화 돼 있다. 교수, 부교수, 조교수 등의 전임교원을 제외하고도 연구교수, 강의교수, 겸임 및 초빙교수, 강사 등의 다양한 비전임교원이 있고 이들 간에는 임금과 고용조건에 있어서 그 격차가 크다.

 

대학 교수사회의 위계서열 구조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강사, 그 중에서도 여성 강사의 삶은 어떨까. 대학사회가 다른 사회적 영역보다 덜 보수적이거나 남성 중심적 문화의 예외적 공간일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시라! 2009년 경상대 여성연구소에서 실시한 대학 교수사회의 성 평등 의식조사 결과는 대학사회도 성차별적 구조와 관행, 의식 및 태도가 작동하고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남성 연구자가 여성 연구자에 비해 연구능력과 강의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 나아가 조직사회의 적응력과 학사 및 학생지도 등의 역할에 더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불평등한 인사 관행에 반영돼 있고 그 결과 대학의 여성교수 비율은 턱없이 낮다. 교수 채용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시간강사의 위촉은 각 학과의 전임교원들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되는데, 위와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성별 분업구조가 작동한다. 지도제자나 후배 챙기기가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미 맞벌이 가구나 1인 가구 중심으로 가족구조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남성 가장 중심의 생계모델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해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구조조정이 가속화될수록 여성 강사가 정리해고의 1차적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고용안정 문제와 더불어 대학은 강사를 포함한 신진 여성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저출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신진 여성연구자들은 연구와 교육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려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가사나 양육의 책임이 여전히 개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돼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가사, 양육 및 가족의 돌봄노동과 연구 및 교육을 동시에 수행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기혼 여성강사의 경우 오죽하면 방학 중에 아이를 낳기 위해 섹슈얼리티와 출산을 조절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방학 중에 태어나는 아이가 효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방학기간은 수입이 없기는 하지만 여성 근로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출산휴가 및 양육휴가를 제도적, 현실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 강사가 스스로 출산 및 양육휴가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출산 시기가 학기 중일 경우에는 자의든, 타의든 그 학기의 강의를 맡을 수 없고 연구에 집중하기도 어려우므로 소위 경력단절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남성들은 가사와 양육을 분담하려 하지 않거나 분담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에 기혼 여성 강사의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현재의 상황에서 대학의 여성강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화되거나 자본화돼야 한다. 연구·교육능력과 별개로 대학 조직사회의 위계구조에 익숙해져야 하고 정치적 관계 맺기에 능숙해야 한다. 대학 운영방식이나 고등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해서도 안 된다. 그랬다가는 소통능력이 떨어지는 모난 사람이거나 감히 월권을 행사하는 분수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어진 연구와 교육 기회에 그저 감사하면서 윗사람들에게는 복종하고 동료들과는 복불복식(나만 아니면 돼!) 경쟁을 하며 이미 기업이 돼버린 대학의 수익을 위해 더 많은 연구 용역을 수주하는 데에 기여하는 연구자가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니체는 노예의 도덕이라 했던가! 노예의 도덕을 내면화한 연구자는 자기만족이나 자기 가치 증식을 추구하기 어렵다. 이런 연구자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대학이 위계적이고 성 불평등한 사회의 거울이 아니라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성 평등한 공간의 바로미터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고등교육재정 확보와 대학의 공공성 확장을 통해 연구자들이 줄서지 않더라도, 연구용역을 따오느라 혈안이 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며 대학 내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적 관행과 위계구조, 문화를 해소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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