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의 위상과 대학교육의 질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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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1 11:18 조회3,160회 댓글0건본문
대학강사의 위상과 대학교육의 질
성공회대학보 - 홍 영 경 -
2015년 3월호
새해 새 학기 개강을 코앞에 두고 동료 강사가 출강하던 서울 모 대학에서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A강좌는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입니다.’
툭 날린 이 문자 한 통은 단순한 안내 공지에 그치지 않는다. 그 대학에서 또 다른 강의가 있지 않다면 강사에게는 해고 통지나 다름없다.(다른 강좌가 무사히 ‘살아남아’ 있다 해도 폐강으로 소득은 반 토막이 난다.) 겨울방학이라는 장기 ‘무급휴가’로 얼어붙은 나날을 뒤로 하고 강단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강의준비와 연구에 한창이던 동료 강사는 문자 하나로 ‘초간단 정리’를 당한 셈이다.
위촉이란 말로 강의를 맡겨 놓고는 폐강이 교육자요 생활인인 강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앞뒤 한 번 살핌 없이 나아가 학생의 학습권 문제도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수강신청 접수를 마감하기 무섭게, 겨우내 들인 시간과 노력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그 야박한 단칼배기에는 교육자로도 노동자로도 위상이 격하를 당하는 강사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학강사를 비롯한 비정규교수는 전임교수와 마찬가지로 하는 주된 일이 교육과 연구다. 학생 수강 신청 안내 책자에도 정규직, 비정규직 구별 없이 담당교수로서 평등하고 대등하게 이름을 올린다. 강의 질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서 말이다. 이렇게 하여 강사는 대학 정규교육의 절반 가까이를 상시 담당하는 한 축이 된지 오래이다. 그러나 대학은 강의 배정에서는 전임교수와 동등한 교육 능력을 내세우면서 실질 대우에서는 크게 차별하여 강사의 교육노동 가치는 제대로 인정하길 꺼린다. 방학 중 연구는 나 몰라라 하며 한 학기에 16주(4개월)간 강의한 시간에만 지급하는 시간당 임금마저도 대학 서로 곁눈질하며 낮게 묶어둔다.
대학강사가 저임금 불안정 교육노동자로 강단에 위태롭게 서는 데는 대학이 ‘교원 아닌 교원’ 지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강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므로 실질은 교원인데 법으로는 교원 신분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까지 교육부의 묵인과 방조 속에 ‘법외 교원’에게 고등교육법의 ‘시간강사’ 조항을 편법 적용해 시간급으로 옭아매는 관행을 한껏 이용했다. 전임교원 충원율을 낮추고 아주 적은 비용으로, 고용도 유연하다 못해 말랑말랑하게, 대등한 인력을 데려다 쓰며 교육을 차질 없이 해나갈 수 있으니 대학에게는 여간 요긴한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강사는 시간강사 체제가 빚은 형편없는 교육연구 여건으로 학기마다 고용과 실업 사이를 오가며 고통에 신음할 뿐이다.
대학강사가 교육노동자로 살아가기에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문제는 주무부처인 교육부 탓이 크다. 강사가 겪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이중고가 갈수록 커져 사태 해결에 팔 걷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교육부는 도리어 뒷짐만 진다. 시간급 체제를 개선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대학사회를 겨눈 법과 제도, 정책이 바뀔 듯한 낌새만 보여도 강사에게는 구조조정 칼바람을 먼저 들이대는 대학 망나니짓에도 관심이 없거나 은근히 부추기는 듯하다. 더구나 대학구조를 개혁하겠다며 내놓은 대학평가지표에 알량하게 끼워 넣은 강의료 기준도 대학으로 하여금 강사가 교육자로서 사명감과 자부심을 안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안정된 여건을 마련하도록 하는 수준과는 동떨어지기만 했다.
지금 교육부는 경제논리에 매몰된 대학구조개혁 정책에 맞춰 구조조정을 하도록 대학을 몰아댄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절반을 맡는 강사의 처우와 여건 개선커녕 강사를 제물로 삼아 줄이고 내치는 구조조정인 한 교육부가 말끝마다 외는 ‘질 높은 교육’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한다면 교육당국과 대학은 강사를 놓고 비용절감이나 따지며 쉽게 쓰고 버리는 관행을 싹 뜯어고쳐 강사가 교원으로서 우뚝 서고 교육자요 연구자로 쏟은 땀의 가치가 강의실에서 빛을 잘 발할 수 있는 풍토를 먼저 다져야 한다. 그것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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