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처지, 시간강사는 말한다 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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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9 11:55 조회3,194회 댓글0건본문
노예의 처지, 시간강사는 말한다 1
한겨레 [왜냐면] 기고글
- 임성윤 비정규교수노조 성균관대 분회장 -
시간강사의 교원화는 멀었다
대학도 강사도 만족하지 못함은
주인-노예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출범한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문제들 중 시간강사 문제를 주요 과제로 지목했다. 고건 위원장을 비롯한 사통위 관계자들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활동가들과 각 대학 경영자들을 만나 문제를 풀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시간강사들과 각 대학의 경영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야무진 꿈을 피력했다.
우리는 현재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은 찾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강사 문제 해결의 핵심은 교원신분 보장과 그에 합당한 처우체계 마련이다. 사립대학의 경영자들은 지금까지 시간강사 ‘제도’를 전횡적 대학 지배의 편리한 도구로, 비용 감축의 중요한 수단으로, 그리고 구조조정의 편리한 방편으로 이용해왔다. 편리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에 교원의 범주에 넣는 것을 대학 경영자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고건 위원장이 주도한 사통위는 결국 양쪽 모두를 전혀 만족시킬 수 없는 대안을 제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사통위 제안을 기초로 해서 법안을 발의했다. 그것으로 모든 세리머니는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교과부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비롯한 시간강사 문제 해결을 위한 각 당의 법안들이 날치기 파동 속에 또다시 묻히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간강사들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처우를 해주자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길은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동의안’이나 ‘형님 예산’처럼 청와대와 여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 때 다른 법안들에 묻어서 가는 경우 뿐이다.
이렇게 일이 진행될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여야 모든 국회의원들이 강사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사회문제이고 교육문제라고 입으로는 동감한다고 한다. 강사를 교원에 넣는 개정안이 현재 국회 교육위에 쟁점법안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 국회, 그리고 대학이 강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통위가 시간강사 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하면서, 강사들의 ‘꿈에도 소원이었던’ 교원의 지위를 강사들에게 준다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어도, 그 제안과 교과부의 개정안을 통해서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단지 학기당 계약을 1년으로 하고, 시간당 급여를 4년 동안 1만원씩(그것도 국립대학에서만) 올려준다는 공약(空約)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마저 곧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되었다. 그리고 근본 문제로, 시간강사 저임금의 주요 원인인 시간급을 여전히 유지하며 교원이라고 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권리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을 사통위는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사립대학 경영자들은 요즈음 기존 전임교수들의 고용마저도 꽤 유연하게 하고자 하는데, 시간강사들의 고용을 학기 단위에서 연 단위로 ‘연장’하는 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그리고 시간강사료 책정을 그동안 마음대로 해왔다. 그것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용납할 리도 없다. 전횡적인 대학 지배를 ‘아주 조금’ 곤란하게 했던 지금의 사립학교법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독점적인 대학 경영을 ‘조금 더’ 어렵게 할 수 있는 시간강사의 교원화를 수용할 리 없다.
왜 대학의 경영자와 시간강사 양쪽 다 만족하지 못하는가? 이는 현재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 시간강사는 노예로 고용되고, 대학은 노예 주인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대학이 강사료를 지급하는 대로 받아야 한다. 정규직 직원과 교수들의 급여를 ‘풍족하게’ 지급하고 이러저런 건물을 ‘최첨단’으로 다 지은 다음에 남은 돈으로 강사료를 지급한다. 그러면서 대학의 재정이 어려워서 그것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강사료를 올리려면 등록금을 올려야 하는데 강사들도 알다시피 지금 경제가 어렵지 않으냐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어려움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왜 이러한 부당한 주장을 강사들은 수용하는가? 다음 학기에 대학의 선생으로 또 연구자로 살아가려면 그 강의라도 해야 하기에 찍소리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해고는 살인이기 때문에! 결국 시간강사들의 희생에 근거해서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 으스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사통위 안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노예와 주인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하면서 대안을 제시한 데 있었다.
애초에 사통위가 노린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타협이 안 이루어지면, 지금의 지배예속관계가 그대로 가는 것 아니겠는가? 천지개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학 경영자들의 전횡적인 대학 운영과 시간강사들의 막막한 처지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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